개기 일식 원정대

개기 일식을 보기 위해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 대한민국 땅에서 개기 일식을 보고 싶다면 2035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마저도 전국에서 딱 한 곳, 강원도 고성에서만 관측할 수 있죠. 더불어 개기 일식 경로의 끝에 걸쳐있기 때문에 태양이 가려지는 시간도 짧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너무 긴 기다림에 비해 아쉬운 점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반면 이번 2024년 개기 일식은 미국을 남부에서 북동부로 크게 훑고 지나갑니다. 그 안에는 큼지막한 대도시 몇 개와 수많은 소도시가 있습니다. 개기 일식 경로와 그 근교 주민들의 수만 해도 1억 5천만 명입니다. 미국 현지 뉴스에서는 ‘미 역사상 최고로 많은 인구를 지나는 일식’이라며 꼭 관측해야 한다고 연신 보도했어요. 그래서 우리도 같은 경험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습니다. 하루빨리 개기 일식을 보기 위해서요.

2024 개기 일식 경로, 가장 남쪽에 텍사스 주가 있다. /NASA

넓고도 넓은 개기 일식 경로 중 우리가 선택한 곳은 텍사스 주였습니다. 텍사스주는 미국에서 가장 오랜 시간 개기 식이 유지되는 곳이며, 가장 중요한 인천 댈러스 직항이 있어요. 더불어 댈러스에서 남쪽으로 500km 정도 내려오면 휴스턴이 나오는데, 이곳은 스페이스 센터가 있는 소위 ‘우주 도시’이기에 개기 일식을 관측하러 온 김에 관광하기도 딱 좋았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주 도시’ 휴스턴은 개기 일식 경로 바깥에 있기 때문에 관측은 이곳에서 할 수 없었습니다. 휴스턴에서 서쪽으로 약 400km를 이동하면 ‘샌 안토니오’라는 비교적 작은 도시가 나옵니다. 우리는 이곳을 관측 베이스로 삼고 날씨와 정확한 경로에 따라 도시 외곽으로 나와 관측할 계획을 세웠어요.
댈러스로 미국에 입국한 후 휴스턴에서 관광, 샌 안토니오를 베이스로 개기 일식을 관측한다. 아주 간단하고 깔끔한 계획이었습니다. 비록 도시와 도시 사이의 거리가 한반도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멀었지만, 미국의 커다란 땅에 비하면 이 정도야 아주 가까운 축이었어요.

이렇게 계획까지 다 세워 놓고 보니 정말 개기 일식을 보러 미국으로 간다는 게 실감이 났습니다. 함께 떠나는 동료들과 만날 때면 항상 여행에 대한 기대로 수다를 떨었어요. 그렇게 이야기하다 일식에 대한 가벼운 토론으로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아주 간단한 두 가지만 소개해 볼 까 합니다.



  • 개기 일식의 경로는 지구상에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까요?

태양 빛이 저 멀리서 지구로 비칩니다. 그 빛을 받으며 지구는 하루에 한 바퀴씩 스스로 자전합니다. 지구는 서에서 동으로 돌고 있지만 땅에 있는 우리들은 느낄 수 없어요. 대신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만약 태양과 지구 사이에 움직이지 않는 방해물이 있다면, 그 그림자 역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달은 지구 주변을 돌고 있습니다. 한 바퀴 도는 데 약 한 달이 걸립니다. 하루 동안 한 바퀴 도는 지구 자전과 한 달 동안 한 바퀴 도는 달의 공전 중에 누가 더 빠를까요?
놀랍게도 달은 지구가 자전하는 속도보다 빨리 움직입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달은 지구 자전보다 빨리 움직이며 태양을 서쪽부터 잡아먹습니다. 결과적으로 달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서에서 동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 2024년 개기 일식이 4분 28초나 되는 이유

지난 2017년에 미국에서 있었던 개기 일식의 최대 유지 시간은 2분 42초였습니다. 반면, 올해의 개기 일식은 무려 4분 28초나 됩니다. 같은 나라에서 관측한 개기 일식이지만 시간이 150%나 증가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게도 달의 크기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달은 타원 모양을 그리며 공전합니다. 때문에 지구와 가까워질 때가 있고, 멀어질 때가 있어요. 2017년의 개기일식은 달이 비교적 멀리 있었습니다. 그만큼 지구에 드리운 달의 그림자도 조금 작았어요. 2024년의 개기일식은 달이 근지점(달이 지구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을 때 일어났습니다. 그만큼 달의 겉보기 크기가 컸고, 그림자도 커졌습니다. 덕분에 태양이 큰 달에 4분 28초나 가려지게 되었고, 우리는 개기 일식을 오래 즐길 수 있게 되었어요.



그렇게 기대를 가득 안고 간 미국 여행 중반, 아주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출발 하기 전부터 여행 하는 내내 개기 일식 날의 기상 정보를 확인하던 우리는 일식 당일 구름이 낀다는 예보에 약간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평소 흐리다고 했다가 맑아지는 경우도 많이 봤기 때문에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휴스턴을 떠나 관측 베이스인 샌 안토니오로 떠나는 날까지도 예보는 나아지지 않았고, 급기야는 천둥 번개의 가능성까지 생기면서 아주 곤란해졌습니다. 앞으로 개기 일식까지는 이틀. 과연 예보가 좋아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물론 태양은 옅은 구름 정도야 뚫고 빛을 낼 수 있는 아주 강력한 천체지만, 개기 일식에서만 볼 수 있는 태양의 코로나는 옅은 구름에도 가려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최종 여행 경로 (빨강), 샌 안토니오는 날씨가 좋지 않아 포기했다.

개기 일식을 100% 즐기고 싶은 우리는 결국 샌 안토니오를 포기했습니다. 휴스턴에서 서쪽으로 가는 대신 일식 경로를 따라 북동쪽으로 이동해 구름을 피하기로 했어요. 거의 텍사스주 전체를 옅은 구름이 덮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목적지는 텍사스주를 벗어난 아칸소 주로 정해졌습니다. 아름다운 국립 공원으로도 유명한 도시, 핫 스프링스입니다.
이 결정으로 무려 730km를 운전하게 되었어요. 더불어 예약했던 숙소의 위약금과 새로운 숙소 비용까지 들었죠. 하지만 완벽한 개기 일식 관측을 위한 이 결정에 모두가 찬성해 주었습니다.

온종일을 달려 도착한 핫 스프링스는 푸르고 맑은 하늘 아래의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다운타운 곳곳이 개기 일식에 대한 기대로 들뜬 모습이었어요. 검은 태양이 새겨진 제품들이 늘어진 상점가를 구경하며 동료들 역시 한껏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개기 일식 당일, 아주 조금의 구름도 피하고자 핫 스프링스 북쪽의 호수로 향했습니다. 또 한 번 80km를 운전해 만난 님로드 호수는 탁 트인 전경을 가진 곳이었어요. 하늘도 맑고 풍경도 아주 멋졌습니다. 이미 호수가 근처로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저마다의 관측 도구로 개기 일식을 맞이할 준비 하고 있었어요. 우리도 적당한 곳에 주차한 후 태양 필터를 씌운 쌍안경과 단망경, 태양 안경 등을 준비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분 식이 시작되었습니다. 태양이 오른쪽부터 까맣게 먹히기 시작했어요. 앞으로 다 가려지기까지는 약 한 시간. 카메라 구도를 잡고 주변 산책하며 관측하러 온 다른 사람들과 이 설렘을 나눴습니다. 태양 안경을 나눠주시는 분들도 있었고, 땅에 색지를 깔아 채도의 변화를 관측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모두가 개기 일식을 진심으로 대하였습니다. 우리가 머나먼 한국에서 이것 하나를 위해 여기에 왔다고 하니 놀라기도 했어요. 우리는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라며 답해주었죠.

점점 가려지는 태양은 곧 ‘다이아몬드 링’이라고 불리는 아주 작은 한 줄기 빛만 남깁니다. 곧 그 빛도 달 뒤로 가려지게 되고, 하늘 가장 높은 곳에는 낯설고도 아름다운 검은 태양이 뜹니다. 검은 태양 주변으로 번진 코로나와 태양 활동 극대기답게 붉게 물든 홍염을 보니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태양이 가려지자, 밤이 된 것처럼 하늘은 남색으로 물들었습니다. 정말 밤이 된 것처럼 조금 쌀쌀해진 공기와 함께, 낮에는 태양 빛에 가려 보이지 않던 행성들과 별들이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했어요. 동쪽과 서쪽 관계없이 먼 하늘은 죄다 노을이 진 것처럼 붉었습니다. 그곳은 달그림자가 미치지 않아 태양 빛이 들고 있는 곳이겠죠. 우리가 지금 달이 만든 그림자 한 가운데 있다는 실감이 났습니다.

쏜살같았던 4분이 흐르고 남서쪽부터 동이 트듯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하면, 개기 일식은 끝이 납니다. 태양 빛이 다시 ‘다이아몬드 링’을 만들어내며 나타났어요. 달그림자는 우리가 있는 아칸소 주를 벗어나 동북쪽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그곳에서 개기 일식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우리가 느꼈던 감동을 지금 받고 있겠지요. 아쉬운 마음에 지금 일식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질투가 날 정도였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개기 일식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경험했는데 어떻게 또 다른 일식을 기다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님로드 호수에서 핫 스프링스 숙소로 돌아오며 자연스럽게 다음 개기 일식을 위한 여행을 머릿속으로 그리게 되었습니다.

천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우주에 대한 관심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개기 일식을 위해 여행을 떠나보세요. 만약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2035년 대한민국에서 있을 개기 일식은 꼭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반드시 천문학과 사랑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멋진 현상을 만들어 내는 우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작성 : 별바다신문 이봄 주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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